BLOG ARTICLE 잡동사니 | 3 ARTICLE FOUND

  1. 2009.06.07 구글 어낼리틱스
  2. 2007.05.28 그래도 지구는 돈다
  3. 2007.05.28 다빈치코드의 진실

오늘 구글 어낼리틱스에 접속해서 2005년 01월 01일 이후 내 블로그에 접속된 국가 현황이다. 비록 많은 접속횟수는 아니지만 여러 나라에서 접속했음을 볼 수 있는데, 어떤 사람들일까? 특히 아프리카 세네갈, 그리고 남미의 파라과이... 물론 외국 여행 중에 내가 접속한 경우도 있을테고 로봇이 접속한 경우도 있을테지만... 아무튼 인터넷도 대단하고 구글도 대단하다는 것을 새삼 실감한다. 부족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블로그를 좀 더 꾸며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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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재판에서 지동설을 부인할 것을 강요받은 후 "그래도 지구는 돈다" 라고 한 뒤 처형되었다고 알려진 갈릴레이의 유명한 말, 과연 이 말 그리고 형장의 이슬로 사려졌다는 이야기는 사실일까?

지금은 지구가 둥글며 또 지구는 금성이나 화성과 함께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갈릴레이 당시에는 거의 모든 사람이 지구는 평평하며 태양이 지구의 동쪽으로부터 서쪽으로 돌고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당시의 생각은 지구가 만물의 중심이며, 이렇게 만들어 놓은 것은 하느님의 뜻에 의한 것이라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믿음을 부정하는 것은 하느님에 대한 불신이므로 대단히 불경스러운 것이라 하여 그렇게 믿는 사람들을 사형에까지 처했던 것이다.

당시의 이러한 교회 중심의 사회 제도 때문에 유명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역시 믿지 않았으며 그의 지동설에 관한 이론을 책으로 출판하지 못하고 그가 죽던 해에 겨우 간행되었다. 그러나 갈릴레이는 자신이 만든 망원경으로 달의 공전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또 목성을 발견하고 그의 주위를 도는 위성을 봄으로써 지구 역시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망원경을 사용한 덕택으로 여러 가지 발견을 하고 나자 갈릴레이의 생각이 점점 일반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그래서 1616년에 교회는 '태양이 정지해 있고 지구가 움직이고 있다는 믿음은 잘못된 것이다.'라는 성명을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이 성명이 있은 지 이틀 후에 갈릴레이는 추기경 모임에 소환당했다. 그 때 그는 그런 생각을 갖거나 가르치거나 변호하지 않도록 공식적인 경고를 받았으며 그는 이에 따르겠다고 서약했다 한다. 그가 참으로 그런 경고를 받았는지 다만 교회가 코페르니쿠스의 책을 금서로 한 것을 알려준 것뿐인지 그 점에 대해서는 저자들 사이에 논쟁이 되고 있다. 사실이 어땠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갈릴레오는 1630년까지 이 이론에 관한 공식적인 발언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자신의 발견에 대한 확신이 명확해지자 갈릴레오는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강력히 지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교회는 대단히 분개했으며 얼마 안가서 종교재판소는 갈릴레이의 저서를 조사하기 위해 위원회를 설치했다. 이 위원회는 그의 설이 틀렸다고 보고했으며 따라서 갈릴레오를 재판소에 출두하도록 명했다. 이 때 그는 70세의 병든 몸으로 재판을 받기 위하여 여행하는 것이 무리라고 항변했지만 당국은 그의 출두를 강요했다. 피의자는 투옥되는 것이 관례였지만 로마에 도착한 갈릴레오는 그의 친구 집에 머물 수 있는 특혜를 받았다.
 
첫 번째 심문에서 갈릴레오는 그 책을 선의에서 썼다고 항변한 것 외에는 거의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나 2차 심문에서는 그가 저술한 것을 부인하지 않는 한 1단계의 고문에 처할 것이라는 위협을 받은 것같다. 그는 자기의 생각이 잘못됐음을 선서하고 고백했다. 갈릴레이의 종교재판은 1633년 로마의 싼타 마리아소프라 미테르바 수도원에서 엄숙히 개정되었다. 여기에는 많은 추기경과 교회의 고동사무관들이 참석했다. 아마 모두 법복을 입고 있었을 것이다. 먼저 갈릴레오의 1615년의 죄가 새삼 들추어졌고 1616년에 복종할 것을 약속했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끝으로 판결이 선고되었다.

"그대 갈릴레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릇된 교의를 가르친 것을 정당하다고 한 죄, 또 성서에서 나온 반대설에 대해서 성서를 자기 자신의 생각에 따라 해석하여 답한 죄로 1615년 종교재판소에 고발됐다. 이에 종교재판소는 다음과 같이 포고한다. 첫째, 태양이 세계의 중심에 있어 움직이지 않는다는 명제는 불합리하며 철학적으로 틀렸고 성서에 명백히 위배되므로 형식상으로 이단이다. 둘째, 지구가 세계의 중심이 아니고 부동이 아니며 운동한다고 한 명제도 불합리하고 철학적으로 잘못되며 신학적으로는 적어도 신앙에 위배된다고 간주한다."

판결문은 계속되었다.

"이것은 참으로 중대한 과오이다. 왜냐하면 어떤 견해라도 성서에 위배된다고 선고하고 결정한 이상 어떤 방법이든 용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대의 주장의 정당성 여부와 그대의 고백과 변명 그밖에 고려할 만한 모든 것을 두루 검토하고 신중히 고려한 끝에 우리는 그대에 대하여 다음 최종판결에 도달했다. 우리는 그대 갈릴레오가 이 종교재판소에서 이단의 혐의를 받게끔 진술했다고 판단하가 다음과 같이 선고한다. 즉 그대는 과오를 범했으며 성서에 위배되는 교의를, 그것이 성서에 위배된다고 선고하고 결정한 뒤에서 계속해서 믿고 지지해왔다. 그 결과 그대는 성스러운 법규에 공포된 대로 위반자에게 가해지는 비난과 형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대가 참된 마음과 성실한 신앙을 가지고 우리들 앞에서 이전의 과오와 이단 및 로마 가톨릭과 법왕의 교회에 위배되는 모든 과오와 이단을 지금이라도 배척하고 저주하고 혐오한다면 기꺼이 그대를 그 비난과 형벌에서 사면해 줄 수 있음을 선포하는 바이다. 더욱 우리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저서가 공공연히 유통되지 않도록 할 것을 선고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대를 임의로 정한 일정기간 동안 이 종교재판소에 감금할 것을 정식으로 통고한다. 또 참된 해결 방법으로 우리는 그대에게 앞으로 3년간 매주 1회 일곱 가지 죄를 씻기 위한 시편을 외울 것을 명하며, 위의 형벌과 참회를 늦추거나 변경시키고 또 전부 또는 일부를 최소하는 권한을 우리들은 유보한다."

이 선고가 끝난 다음 갈릴레이를 꿇어 앉게 하여 다음과 같은 서약을 하도록 시켰다.

"나 갈릴레이, 고(故) 빈껜찌오 갈릴레이의 아들 금년 70세인 피렌체는 재판소에 나와 추기경님 및 이단의 부패에 대항하는 전세계의 그리스도교국의 종교재판소장님 앞에 꿇어 엎드려 앞의 복음성서에 손을 얹고 성가톨릭과 법왕의 로마교회가 지지하고 설교해온 모든 것을 언제나 믿어 왔으며 현재도 믿고 있으며 신의 도움으로 장차에도 믿을 것을 서약합니다. 그러나 이 종교재판소에서 법의 의하여 태양이 세계의 중심에 있어 움직이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그릇된 견해를 포기하도록 명령받고 또 위의 교의를 지지하고 변호하고 가르치는 것을 금지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위 재의를 취급하는 한 책자를 쓰고 출판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위 재판소에서 심히 이단의 혐의가 있는 것 즉 지구가 세계의 중심이 아니고 태양의 둘레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지지하고 믿는 것에 대해 엄격히 비판받는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중략)

더욱 나는 이 종교재판소가 내게 명령하는 모든 회개 명령을 실행하고 완전히 지킬 것을 맹세합니다. 그러나 만약 내가―그런일은 결코 없겠습니다만―말 한 약속이나 서약에 위배되는 행위를 할 때에는 위반자에게 내려지는 성스러운 법규나 다른 일반적인 또는 특수한 법률이 규정하고 공포한 모든 형벌을 달게 받겠습니다. 신이여, 내가 손을 얹고 있는 성복음서여, 나를 구하소서. 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이상과 같이 선서하고 약속합니다."

이것의 증거로서 나는 이 선서의 문서 한 구절 한 구절을 되새겨 외우고 나서 손수 서명했습니다.
1633년 6월 22일
로마 미네르바 수도원에서.

갈릴레이는 이와 같이 선서를 하는 동안 몹시 추위를 느껴 떨고 있었으며, 선서를 마치고 일어섰을 때 지구가 움직이고 있는 것을 부정한 사실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받아 안절부절 못했다고 한다. 그는 결국 땅을 내려다보며 "지구는 그래도 움직인다"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종교재판 결과, 갈릴레이에겐 무기징역이 선고되었고 엄중한 감시하에 피렌체 교외의 자택에서 사랑하는 장녀와 시력마저 잃은 채 고독한 여생을 보내다가 1642년 세상을 떠났다. 갈릴레이가 죽은 후 교황청에서는 공식적으로 장례를 지내는 것과 묘비를 세우는 것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갈릴레이의 종교 재판은 실추되고 있던 교회 권위를 유지하려는 정치 재판의 성격이 강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갈릴레이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지만 이 판결은 실제로는 정상적으로 집행되지 않았다. 즉, 갈릴레이는 공개적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부정하는 고해성사를 해야 했고 판결과는 달리 그는 하루도 감방에서 보낸 적이 없었다. 결국 교회는 갈릴레이를 죽일 생각도 없이 단지 교회 권위의 수호 차원에서 그를 종교재판에 회부했고, 갈릴레이 자신도 목숨을 걸고 교회에 대항할 생각은 없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실제로 그에겐 그럴 용기도 없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갈릴레이가 법정을 나오면서 중얼거렸다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일화는 그 사실성 여부가 의심되며, 갈릴레이가 죽은 뒤 후세 사람들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갈릴레이의 종교재판이 있은 지 360년이 지난 1992년 10월 31일 로마 교황청은 1633년 6월의 종교재판에 대해 그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갈릴레이의 완전 복권을 선언함으로써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었다. 진리는 영원불변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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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영화 「다 빈치 코드」의 뚜껑이 열리자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이 쏟아졌다. 과연 「다 빈치 코드」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사람들은 이 소설과 영화를 단지 재미삼아 보고 말까?

그러면 「다 빈치 코드」의 결정적 허구는 무엇일까?  그것은 ‘시온 수도회’에 관한 내용들이다. 전체 줄거리의 중심인 시온 수도회가 ‘거짓’이라면 어떻게 되겠는가? 다른 내용은 볼 것도 없다. 그런데 ‘시온 수도회’와 관련된 주장들은 모두가 거짓임이 판명되었다. 자, 그러면 그 조작의 경위를 알아보기로 하자.

「다 빈치 코드」의 주장에 따르면 시온 수도회는 1099년 창설되었고, 그 역할은 성배의 비밀을 담고 있는 문서와 마리아 막달레나의 유물, 그리고 예수의 후손인 프랑스 메로빙거 왕조를 보호하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로 내세우는 것은 1885년 ‘렌 르 샤토’에서 소니에르 신부가 발견했다고 전해지는 ‘소수도원 문서’이다. 하지만 이 문서는 존재하지 않는 문서로 판명되었다. 이 소문의 진상은 이렇다. 

1880년대에 ‘렌 르 샤토’라는 지역 소수도원 성당에 부임한 소니에르 신부는 성당 제단 기둥을 개축하다가 묘연의 문서들을 발견하여 파리의 고(古)문서 취급상들에게 넘겨주고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소문이 생긴다. 이 소문을 ‘렌 르 샤토’의 전설이라 부른다. 

그런데 1950년 경 피에르 플랑타르라는 사람이 ‘렌 르 샤토’의 이야기를 들은 후 소문 속 문서들을 위조하여 떼돈을 벌 속셈으로 사기극을 공모한다. 플랑타르는 자신들이 위조한 일명 ‘비밀문서’에 등장하는 ‘시온 수도회’를 1956년 몇 몇 친구들과 함께 설립하고, 마침내 1960년대에 이 문서들을 파리 국립도서관에 등록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공모자들은 자신들이 소니에르 신부가 발견했다는 양피지문서를 찾아냈다고 여론에 공개하고 이와 관련하여 일련의 서적들을 발간하여 짭짤한 수입을 올리게 된다. 그러나 1967년 플랑타르의 동료인 제라드 드 세드가 책에 대한 인세문제로 플랑타르와 싸움이 붙어, 이 위조 사실을 퍼뜨리게 된다. 이후 1973년 저널리스트인 장 뤽 쇼메우에 의해 ‘비밀문서’의 허위성이 하나씩 밝혀지게 된다.

이런 가운데 영국의 BBC 방송의 다큐멘타리 제작진은 이러한 사건들이 허위임을 알고 있음에도, 상업적 의도와 흥행을 목적으로 1972년부터 세 차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여 방송에 내보냈고, 이것이 인기를 끌자 1982년에 「성혈과 성배」라는 책을 발간한다. 하지만, 1997년에 BBC 방송국 측은 최종적으로 이 이야기들이 사실이 아님을 밝히는 방송을 하였고, 오늘날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 모든 것이 조작극이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렌 르 샤토’의 문서들과 「성혈과 성배」의 내용이 허위 사실임이 밝혀졌는데도 댄 브라운은 2003년 이것들을 기반으로 하여 소설 「다 빈치 코드」를 발간했다. 이렇게 ‘거짓’을 알고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그것들이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꾸며 책을 냈던 것이다.

자료출처 <가톨릭인천교구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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